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 별세
박원지 기자 입력 : 2023. 04. 06(목) 14:52
고 오승우 화백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3일 오후 병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오승우(1930~2023) 화백은 한국 인상주의의 선구자 고(故)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장남으로 평생 한국의 전통과 정신 문화를 탐구해온 작가였다. ‘100산’, ‘십장생도’ 등 시기마다 다양한 연작을 선보이며 우직하게 작업에 혼신을 다했다. 고인의 동생 고(故) 오승윤(1939∼2006) 화백과 함께 미술 일가를 이뤘으며 두 아들 병욱, 상욱씨도 각각 서양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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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화백은 화순 출신으로 1950년 조선대 미대를 졸업하고 광주여고에 근무하던 1957년부터 ‘법당 내부(화엄사)’ 등으로 한국 미술가의 등용문인 국전에서 4년 연속 특선을 수상, 1961년 불과 31살의 나이에 국전 추천작가 반열에 올랐다.

1993년에는 부친 오지호 화백에 이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으며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성옥문화대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오화백은 불상, 고궁, 전통, 사찰 등 한국적 근원에 대한 탐구에 열중했다, 1983년부터 1995년까지 전국 130여개의 산을 직접 올라 완성한 ‘100산 시리즈’를 마쳤으며 66세에 중국 북경에 1년 동안 체류하며 완성한 ‘동양의 원형’ 시리즈는 평생의 주제였던 동양 정신의 근원을 찾는 연작으로 이후 몽골, 네팔,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십장생’ 시리즈를 제작했으며 역사 기록화 작업도 꾸준히 진행했다.

왕성한 창작 활동과 더불어 고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한국 구상화단의 대표 그룹인 (사)목우회다. 구상화단과 후학들을 위해 1983년부터 10년간 목우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한국 구상의 리더 역할을 했다.

오화백은 2011년에는 그가 기증한 178점을 바탕으로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이 문을 열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모교인 조선대에 “내 생의 마지막 기증이 될 것”이라며 27점을 기증했다.

고인과 조선대 미술대학 선후배 관계로 오랜 인연을 이어온 황영성 화백은 “오 화백은 굉장히 인생을 열심히 사신 분으로 명산 시리즈를 비롯해 기록화 등을 많이 남겼다”며 “그림에 대해서는 자기 소신이 뚜렷하셨고, 조선대 미술대 회장도 맡으시는 등 후배들도 많이 아끼셨다”고 말했다.
박원지 기자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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